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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노천명

(1911 – 1957)

노천명은 6세 때 홍역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났고, 부모는 이를 하늘이 주신 명이라고 여겨 노기선이라는 이름을 노천명으로 바꾸었다.

진명여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1934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잡지 여성의 편집인이 되었다. 1932년 시 ‹밤의 찬미›로 등단했고, 6년 뒤 첫 시집 «산호림»을 발표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중에 쓴 ‹군신송›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등 14편의 시가 전쟁을 찬양하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선동한 것으로 밝혀져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월북 작가들이 주도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으나,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노천명을 부역죄로 체포하여 징역 2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했다. 1951년 사면을 받아 풀려났고, 1957년 6월 16일에 종로 누하동 자택에서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백혈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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