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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정지용

(1902 – 1950)

정지용(鄭芝溶)은 1902년 6월 20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어머니가 연못의 용이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다고 해서 지용(池龍)이고, 영세명은 프란시스코다.

정지용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당시 박팔양과 함께 요람동인(搖籃同人)을 결성했다고 전해지며, 1922년 졸업하는 해에 첫 시로 알려진 ‹풍랑몽›을 썼다. 1년 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모교의 교비 유학생으로 교토 도시샤대학에 입학하고, 1929년 6월 논문 ‹윌리엄 블레이크 시의 상상력›으로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 가톨릭 영세를 받았고, ‹산엣 색시 들녘 사내› ‹새빨간 기관차› 등 다수의 시를 발표했다. 귀국 후 16여 년간 휘문고등보통학교의 영어 교사로 재직하며 사회주의 경향의 계급문학에 반대하는 구인회와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45년 일제 패망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지만 3년 뒤 교수직을 사임하고 서울 은평구 녹번리에 초당을 짓고 은거한다.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49년 9월에 문교부가 선정한 좌익 필자군에 포함되어 ‹고향› 등 10편의 작품이 중등학교 교과서에서 모두 삭제되는 아픔을 겪는다.

1950년 7월경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정지용은 녹번리 초당을 나선 뒤 행방불명되었다. 이후 월북 시인으로 계속 오인되다가 1988년 4월 공식적으로 그의 작품은 모두 해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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