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윤동주 서거 70주년 추모 시집 «사랑스런 추억»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요절했다. 2015년 윤동주 서거 70주년과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아티초크는 새로운 감각과 편집으로 «사랑스런 추억»을 출간하였다.
이번 시선집은 ‹투르케네프의 언덕› ‹별 헤는 밤› ‹사랑스런 추억› 등 72편의 명시와 ‹달을 쏘다› ‹별똥 떨어진 데› 산문 2편, 윤동주 당대의 사진과 가족 및 주변 인물의 증언, 이중섭과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 총 30점의 삽화, 그리고 상세하고 친절한 해설과 연보로 알차게 구성되었다.
이 책의 디자인은 뉴욕의 아트 디렉터 로렌조 브리비오가 총괄하여 세계 및 국내 최초로 동시에 3가지 표지 디자인으로 출간하였다.
사랑스런 추억, 식민지 시대 윤동주의 서글픈 자화상
이번 시집의 표제 시 ‹사랑스런 추억›은 윤동주가 일본 유학시절인 1942년 5월 13일에 쓴 시로서, 오늘날 볼 수 있는 그의 마지막 다섯 작품ㅡ‹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 ‹봄›ㅡ중 하나이다.
‹사랑스런 추억›을 관통하는 모티브는 식민지 종주국 일본에서 유학하는 시인의 설움과 부끄러움이다. 화자는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을 그리워하며 ‘간신한 그림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그려낸다.
윤동주는 숭실학교 재학 시절인 열아홉 살 때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했으나,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된다. 나라 잃은 청춘의 설움과 수치심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날아다니는 ‘비둘기 떼’와 대비되고, 화자는 ‘희망과 사랑처럼’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적 갈등과 고뇌는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윤동주의 시를 박두진 시인의 찬사대로 “하나의 영원한 비극적 아름다움”으로 만들어주었다.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요절 시인의 목소리
윤동주는 열일곱 살에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로 시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디었다. 1941년 겨울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고자 했으나, 일제의 검열을 우려해 그 꿈은 좌절되었다. 이 시집의 원래 제목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병원»이었으나 ‹서시›를 쓴 뒤 변경되었다.
1943년 7월 윤동주는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갈 준비를 하던 중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1945년 2월 16일 일제 패망 6개월 전에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다. 그가 남긴 120여 편의 시는 사후에 빛을 발하여 정지용과 박두진, 고은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에 의해 찬사를 받으며 오늘날까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울러 아티초크의 «사랑스런 추억»은 시인의 가족뿐만 아니라 정지용 시인, 문익환 목사, 유영 전 연세대학교 교수 등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시와 함께 제공하여 윤동주의 삶과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복원하고 새롭게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저자소개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해환(海煥)’이다. 명동소학교를 거쳐 용정의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여 이 시절 첫 시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를 썼다. 숭실중학교로 편입한 윤동주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하고,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에 편입하여 1938년에 졸업했다. 1938년 4월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재학 시절에 산문 ‹달을 쏘다› 와 시 ‹유언› ‹아우의 인상화›를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했다. 1941년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주변인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41년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로 창씨개명하고, 이듬해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 선과에 입학했다.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 등 유학 시절에 쓴 5편의 시가 오늘날 볼 수 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들이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