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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나혜석

(1896 – 1948)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근본 이념은 인간은 자유롭고, 여성은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혜석은 ‹모 된 감상기›에서 모성이 허위의식임을 피력했고 ‹이혼 고백장›에서는 조선의 정조관념을 정면 비판했으며 ‹우애결혼, 시험결혼›에서는 이혼의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시험결혼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가부장제 타파와 양성평등을 위해 투쟁했다. 그녀의 고군분투는 1930년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듬해 나혜석은 ‘사랑의 자유 선언’에서 여자에게도 성욕이 있으며 그것은 죄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탕녀로 낙인찍혀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여승이 된 친구 김일엽이 있는 수덕사에 찾아가 승려가 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9년 3월 4일, 서울시립병원은 65세로 추정되는 무연고자 여성이 영양실조와 실어증으로 사망했다고 처리했다. 이 여성이 바로 1948년 12월 10일에 사망한 53세의 나혜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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