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미스 아티초크 퀸 마릴린 먼로
한국의 유명 여성 배우들이 미스코리아나 미스 춘향, 감귤 아가씨, 더덕 아가씨, 한우 아가씨 등 지역 축제의 미인 선발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입문하듯이 해외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갤 가돗, 미셀 파이퍼, 할리 베리, 탕 웨이, 양자경, 아이쉬와라 라이 등이 대표적이죠.
마릴린 먼로 역시 1948년 2월 캘리포니아 중부의 카스트로빌에서 열린 미인 선발대회 ‘미스 아티초크 퀸’을 최초로 수상함으로써 할리우드 스타로 가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카스트로빌은 지금까지 매년 아티초크 축제를 개최하는 미국 최대의 아티초크 재배지 중 한 곳입니다.) 먼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에서 페인트 분무를 담당한 노동자였고, 공장을 방문한 사진가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미스 아티초크 퀸 수상으로 먼로는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보다 널리 알릴 수 있었고, 수상 직후 캘리포니아 여기저기에서 몰려든 팬들이 먼로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는 기사도 위의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아티초크 퀸 왕관을 쓴 수상자가 샐리 D. 허버트이고 노마 진은 ‘명예 아티초크 퀸’인 걸로 봐서 행사 측에서 일종의 홍보를 위해 그녀를 초청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모델보다 배우에 욕심이 컸던 먼로는 1949년부터 ‹러브 해피› ‹이브의 모든 것› ‹파이어볼› ‹아스팔트 정글› 등 인기 영화에 출연하고, 1953년에 드디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와 ‹백만장자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주연을 맡아 할리우드 슈퍼스타로 등극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먼로가 섹스심벌이라는 고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미하엘 체호프로부터 연기 수업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체호프는 모스크바 예술극장 단장을 역임한 연출가이자 교육자이며 먼로의 지적, 예술적 욕구를 높이 평가한 스승입니다. 체호프의 교수법에 따라 연기 수업에 매진한 먼로는 ‹버스 정류장›(1956)에서 펼친 연기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이끌어냈고, 골든글로브상 후보로도 지명되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대중에게 그녀가 애서가라는 사실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많요.
PS. 먼로는 스타가 되기 전 UCLA에서 문학과 예술비평 과목을 수강하며 배우 생활을 한 이력이 있습니다.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만남도 먼로의 지적 욕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촬영장에서 소리내어 읽었던 먼로, 월트 휘트먼의 시를 침대 위에서 암송하기 즐겼던 먼로를 다음 번 포스팅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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