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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 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김명순

“너 자신은 이 등불의 빛으로 인간의 열정이 낳은 뜨거운 시들을 읽으리니, 그 시들은 너로 인하여 더욱 깊어지리라.”-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도서정보
· 제목: 세계 여성 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 분야: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3
· 장르: 여성 시
· 출간일: 2016. 11.23
· 언어: 한국어
· 저자: 나혜석, 에밀리 디킨슨 외
· 역자: 공진호
· 형태: 페이퍼백, 표지 3종
· 페이지: 172쪽
· 정가: 8,800원
· 사이즈: 110×180×11mm
· ISBN: 979118664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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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 , , Product ID: 1348

소개

페미니즘 문학의 빛과 소금이 된 세계 여성 시인들
“훌륭한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열세 번째 책 «세계 여성 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주류 문학사에서 주변부로 존재하며 오늘날 여성문학이 자생하는 데 빛과 소금이 된 23명의 근현대 여성 작가의 명시를 엄선한 시선집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용어로 자리 잡아 가고 있으나, 여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인식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예속 상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 시문학의 대중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을 통해 인간해방을 실현하고자 하는 신념과 실천이라고 할 때, 여성문학은 가부장제 사회가 주입한 ‘여성다움’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한 ‘여류문학’과는 차별된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의 시인들은 열등한 성으로 고정화되었던 여성의 체험과 글쓰기가 1960년대 이후 인간회복과 휴머니즘의 중요한 가능성으로 떠오르는 데 일익이 된 주인공들이다. “훌륭한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언한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 김명순에서부터 억압된 여성 천재의 상징적 인물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시로 표현되는 여성의식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독일 근대 지성계의 대모 리카르다 후흐, 중국의 급진 혁명가 치우 찐, 영국의 페미니스트 시인 샬롯 뮤와 애나 위컴,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퓰리처상 수상자인 양성애자 작가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등 9명의 해외 여성 시인들은 페미니즘 시문학의 가능성과 외연을 확장한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출간 의의를 갖는다.

아울러 세 가지 표지로 동시 출간된 이번 시선집에 수록된 나혜석의 산문 ‹이혼 고백장›과 각 시인에 관한 흥미진진한 소개 및 삽화는 기존 여성문학 독자에게는 새로운 결의 페미니스트 시 세계를, 여성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깊은 공감과 뜨거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페미니스트, 혁명가, 천재 작가, 남장 보헤미안, 그리고 익명의 여성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여성시의 새로운 스펙트럼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의 문을 여는 세 시인은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이자 보들레르 번역가인 김명순,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김일엽이다. “불순한 피” “금수(禽獸)”로 취급받았던 이 1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자기 체험과 고백, 사상을 문학화하여 가부장제 하에서 도덕적으로 위장된 여성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했고, 모두 사후에야 한국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같이 근대에 여성이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가부장제가 규범화한 여성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아티초크가 국내 처음 소개하는 해외 여성 시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자기가 쓴 시가 빌미가 되어 참수당한 중국의 급진 혁명가이자 여성운동가인 치우 찐, “독일의 사포”로 불린 남장 보헤미안 엘저 라스커 쉴러, 불행한 결혼생활 뒤 자살한 영국의 페미니스트 시인 애나 위컴, 라틴 아메리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의 익명의 여성들이 시를 통해 담대하면서도 섬세하게, 처절하면서도 결연하게 자신이 처한 억압된 현실을 증언하고, 인간해방과 사랑을 꿈꾸었다.

“너 자신은 이 등불의 빛으로 인간의 열정이 낳은 뜨거운 시들을 읽으리니, 그 시들은 너로 인하여 더욱 깊어지리라”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가 소개하는 근현대 여성 시인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갈망하는 여성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류 문단의 주변부에서 존재하되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여성문학’의 자생에 빛과 소금이 된 “인간의 열정이 낳은 뜨거운 시”들을 이제 한국의 독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새 생명을 불어넣을 차례다.

작가소개

나혜석 (1896 – 1948)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가부장제 타파와 양성평등을 위해 투쟁한 여성운동가다. 그녀는 ‘사랑의 자유 선언’에서 여자에게도 성욕이 있으며 그것은 죄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탕녀로 낙인찍혀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여승이 된 친구 김일엽이 있는 수덕사에 찾아가 승려가 되고자 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다. 1949년 3월 4일, 서울시립병원은 65세로 추정되는 무연고자 여성이 영양실조와 실어증으로 사망했다고 처리했다. 이 여성이 바로 1948년 12월 10일에 사망한 53세의 나혜석이었다.

김명순 (1896 – 1951)
김명순은 평양의 부호 김희경과 기생 출신의 소실 산월(山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 근대문학사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은 에드거 앨런 포우, 샤를 보들레르,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번역가이자, ‹장한몽› ‹나의 친구여›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1세대 신여성으로서 국내와 일본에서 신교육을 받았지만, 기생의 딸이라는 배경과 훗날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되는 이응준에게 당한 데이트 강간은 김명순의 일생을 옥죄었다. 그러나 김명순은 조선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이며 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이 필수적임을 굽히지 않았다. 1951년 생활고와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일본 아오야마 뇌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엽 (1896 – 1971)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김일엽은 1896년 개신교 목사인 김용겸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과 일엽이 돌보는 동생들의 연이은 병사, 설상가상으로 17세 때 아버지마저 잃어 고아가 된다.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졸업했다. 1927년 1월 8일, 조선일보에 발표한 논설 ‹나의 정조론›에서 김일엽은 정신적인 정조가 육체적인 정조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33년 가을, 예산군 수덕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1971년 2월 1일 수덕사 견성암 별실에서 76세로 사망하였다.

장정심 (1903 – 1947)
기독교 시인 장정심은 개성 최초의 감리교인 장효경의 딸로 태어났다. 감리교 계통의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 이화학당 유치사범과와 협성여자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잡지 ‹청년›으로 등단했고, 1933년 신앙생활을 주제로 한 첫 시집 «주의 승리»를 발표했다. 1938년 4월 25일, 기독교여자절제회 총무였던 장정심은 일선 교회 대표들과 서대문경찰서에 집결하여 신사참배와 황도정신 함양을 골자로 하는 친일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7년에 사망했다.

강경애 (1906 – 1943)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강경애는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다. 1923년 10월 15일, 평양 숭의여학교 학생 강경애는 추석 성묘를 미신이라고 규제하는 미국인 교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동맹휴학을 벌였고 결국 퇴학당했다. 강경애는 흥풍야학교를 세워 무산계급 아동과 농민들을 위한 교육에 앞장섰고, 1929년 조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조직된 근우회 간부로도 활동했다. 기성 문단의 배척 속에서도 글쓰기에 매진했고,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인간문제›가 히트를 치면서 리얼리즘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노천명 (1911 – 1957)
노천명은 6세 때 홍역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났고, 부모는 이를 하늘이 주신 명이라고 여겨 노기선이라는 이름을 노천명으로 개명하였다. 진명여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1934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잡지 ‹여성›의 편집인이 되었다. 태평양전쟁 중에 쓴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등 14편의 시가 전쟁을 찬양하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선동한 것으로 밝혀져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월북 작가들이 주도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으나,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노천명을 부역죄로 체포하여 징역 20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하였다. 1957년 6월 16일에 종로 누하동 자택에서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지하련 (1912. 7. 11 – 미상)
지하련의 아버지는 거창의 부호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이진우이며, 어머니 박옥련은 그의 소실이었다. 그녀는 도쿄 소화고등여학교와 도쿄여자경제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1935년 4월 카프의 서기장인 임화가 해산계를 제출하고, 결핵 치료차 마산으로 내려갔을 때 두 사람은 교제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7월 8일에 결혼했다. 본격적인 글쓰기는 임화로부터 결핵에 감염되어 홀로 마산에 내려가 요양하면서부터다. 지하련의 비극은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북하면서부터다. 1952년 아들이 행방불명되고, 1953년 8월 6일에는 남편이 미국 고용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북한에서 처형당했다. 지하련은 남편의 주검을 찾기 위해 평양을 헤매 다녔다고 전해진다. 이후 지하련은 자살했다는 설과 교도소에서 병사했다는 설이 있다.

백국희 (1915 – 1940)
스물다섯 살에 요절한 백국희는 191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보통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영문학자 변영로의 수업을 들으며 영국 시인 아서 시몬스의 «어부의 홀어미»를 번역하기도 했다. 교지 ‹이화›에 수필 ‹가을›과 시 ‹달밤›을 발표했고, 모교인 이화여자보통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0년 사망했으며, 정확한 사인과 일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Elizabeth Barrett Browning (1806 – 1861)
브라우닝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유명한 인기 시인이었다. 첫 주요 시집 «천사들 외»를 1838년에 출간했고, 1844년에 출간한 시집 «시»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 연인이자 부부로 살았다. 그녀는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부를 이룬 집안의 열두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열두 살 때 첫 시집을 썼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Christina Rossetti (1830 – 1894)
영국의 시인 로제티는 이탈리아의 시인 가브리엘레 로제티의 딸이자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동생이다. 31세에 대표작 «도깨비 시장 외»로 명성을 얻어 당대 여성 시인의 기수로 이름을 굳혔다. 1893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지만 그 이듬해에 재발하여 사망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가려 인기가 식었으나 1970년대에 학계의 관심이 부활하고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녀를 억압된 여성 천재의 상징으로 평가한다.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 – 1886)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의 명문가에 태어나 평생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주위의 권유와 기회가 있었음에도 생전에 발표한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디킨슨이 죽은 뒤, 여동생 라비니아가 1천8백여 편의 시가 담긴 상자를 발견했고, 1890년에 첫 유고 시집이 출간되었다. 1,775편의 시가 수록된 완결판은 1955년에 출간되었다.

리카르다 후흐 Ricarda Huch (1864 – 1947)
‘독일 지성계의 대모’ 리카르다 후흐는 독일 중부의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태어나 취리히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1898년 이탈리아의 치과의사와 결혼했으나 딸 하나를 두고 1906년에 이혼하고, 사촌과 재혼했다. 20세기 초 독일의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로 시, 소설, 문학비평 및 역사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엘저 라스커 쉴러 Else Lasker-Sch?ler (1869 – 1945)
유태계 독일 시인으로 유복한 가정에 태어났다. 1902년에야 첫 시집 «스틱스»를 냈지만, 그녀는 10대와 20대에 이미 표현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1932년에 당시 독일의 가장 중요한 문학상이었던 클라이스트상을 수상했다. 1927년, 28세의 아들이 결핵으로 죽은 뒤 깊이 상심한 데다 나치정권을 피하고자 취리히를 거쳐 1934년 예루살렘에 정착했으며, 1945년에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시집 «블루 피아노»를 출간했다.

샬롯 뮤 Charlotte Mew (1869 – 1928)
영국 시인 뮤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1898년 건축가인 아버지가 아무런 재산 없이 사망하자 7남매 중 둘은 정신병으로 관련 보호시설에 수용되었고, 셋은 어려서 죽었다. 샬롯은 단 하나 남은 여동생 앤과 정신병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녀는 거의 평생 짧은 머리에 멋쟁이 남장을 하고 다녔다. 1927년 동생 앤이 암으로 죽자 깊은 우울증에 빠져 요양소에 입원했으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에이미 로얼 Amy Lowell (1874 – 1925)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저명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이미지즘 운동의 주요 인물로서, 감상이 배제된, 냉철한 미국적인 시를 성취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산문 영역에서는 평론가로도 활동했고, 운율에 변화를 주는 산문을 구사했으며, 영국 시인 존 키츠 전기를 집필했다. 1914년에 첫 번째 주요 시집 «검은 날과 양귀비 씨»를 출간했고, 사후에 출간된 «왓츠 어 클락»으로 1925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치우 찐 秋瑾 (1875 – 1907)
법률가의 딸로 태어난 치우 찐은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뒤인 1903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쑨원의 혁명당에 가입했다. 1906년 중국으로 돌아가 상하이에서 여성을 위한 신문을 창간했다. 그녀는 교사로도 일했는데, 그 학교는 혁명군의 비밀 본부 역할을 했다. 그녀는 1907년 7월 12일, 자기의 시가 빌미가 되어 당국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지만 반란 모의 사실을 불지 않았으며, 7월 15일에 참수당했다. 불 같은 삶을 살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치우 찐은 중국 여성의 자립에 상징적인 인물이다.

애너 위컴 Anna Wickham (1883- 1947)
영국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장했다. 1904년에 런던으로 돌아가 성악 수업을 받고 파리에서 가수로 잠시 활동하다가 1906년에 변호사인 남편과 결혼했다. 자녀 넷을 두었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그녀가 시를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것은 언제나 격렬한 언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1926년에 별거에 들어갔으며, 3년 뒤 남편이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1947년 겨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너 위컴은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엘리너 와일리 Elinor Wylie (1885 – 1928)
미국 뉴저지주 명문가에서 출생하여 워싱턴 D. C.에서 성장했다. 1906년에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필립 시먼스 히치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1910년, 처자식이 있는 17살 연상의 변호사 호레이스 와일리와 눈이 맞아 영국으로 달아나 함께 살다가 1916년에 결혼했다. 히치본은 1912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1923년 시인 윌리엄 로즈 베네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21년에 시집 «바람 잡는 그물»을 낸 뒤로 시집 세 권과 소설 네 권을 출간했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Gabriela Mistral (1889 – 1957)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스트랄은 칠레의 바꾸냐에서 초등학교 교사이자 아마추어 시인의 딸로 태어났다. 미스트랄은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보조 교사로 일할 때 철도 회사 직원과 열애했으나, 애인이 자살하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다. 멕시코와 칠레의 교육 제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의 문화위원회에서 활약했으며, 나폴리, 마드리드, 리스본 주재 칠레 영사를 지냈다. 1914년, 죽은 이를 기리는 연시 «죽음의 소네트»로 명성을 얻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녀의 학생이었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Edna St. Vincent Millay (1892 – 1950)
미국 메인주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917년 바사대학교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단편소설과 노래를 번역하기도 하고 배우이자 희곡작가로도 일했다. 1923년에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매사추세츠 버크셔즈의 농장에 정착했다. 1917년에 첫 시집 «부활»을 내고, 1922년에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시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녀는 양성애자임을 감추지 않았으며, 1920년 시집 «엉겅퀴에서 무화과»를에서 여성이라는 성(性)과 페미니즘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탐색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1950년에 자택의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했으며, 사인은 관상동맥폐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역자소개
공진호는 하퍼 리의 «파수꾼»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에드거 앨런 포우 시선: 꿈속의 꿈» «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 사랑 사랑 뱅뱅» «아틸라 요제프 시선: 일곱 번째 사람»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마리 A.의 기억»을 비롯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 예찬» 등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뉴욕에 거주하며 번역과 창작을 하고 있다.

목차

김명순
– 내 가슴에
– 분신(分身)
– 유언
– 유리관 속에
– 탄실의 초몽
– 들리는 소리들

나혜석
– 인형의 가(家)
– 모(母) 된 감상기
– 아껴 무엇하리 청춘을
– 노라
–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김일엽
– 알거든 나서라
–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삽기에
– 나의 노래
– 시계추를 쳐다보며
– 오도송

장정심
– 금선(琴線)
– 임의 정
– 사랑

강경애
– 오빠의 편지 회답
– 참된 어머니가 되어 주소서
– 산딸기

노천명
– 사슴
– 면회
– 추풍에 부치는 노래
– 나에게 레몬을

지하련
– 어느 야속한 동포가 있어

백국희
– 코스모스
– 비 오던 그날
– 녹음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냐고요? 한번 헤아려 볼게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 사포의 노래
– 노래
– 당신은 잊었나요?
– 마지막

에밀리 디킨슨
– 그녀의 가슴은 진주에 어울려요
– 인생 VI

리카르다 후흐
– 무제
– 죽음의 씨앗

엘저 라스커 쉴러
– 화해
– 연가
– 성배의 왕자에게

샬롯 뮤
– 무슨 좋은 말을 할 게 있을까
– 볼테르가를 지나가는 남자
– 방

에이미 로얼
– 택시

치우 찐
– ‘강이 붉다’ 곡에 맞춰
– 동원령

애나 위컴
– 불 지핀 도가니
– 연애편지
– 이혼

엘리너 와일리
– 예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느린 비
– 내 안의 여자
– 예술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 소네트 14

익명의 아프가니스탄 시인
– 무제

무명의 아콜리족 시인
– 번개야, 번개야, 내 남편을 쳐

무명의 아칸족 시인
– 사랑의 노래

나혜석: 이혼 고백장

작가 소개
원제목 색인